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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수 없는 존재, 하늘의 속한 사람, 스스로 있는 자를 회복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은 본래의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위장된 나, 스스로를 속이는 나, 수많은 가면으로 치장한 나는 죽어야 본래의 내가 드디어 숨을 쉴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는 비로소 창조적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이상하고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을 병에 걸렸다든지,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하는 순간에서야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금 가진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는다. 이상하지 않은가?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삶을 포기해야하는 순간에서야 그것이 보인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눅 23:34)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신앙이 깊다는 사람들일 수록 생각지도 않게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익숙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불편하고 불안하기 때문일것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은 죽어야 산다. 죽을 수 없는 존재는 다시 의식을 해야만 죽지 않고 힘있게 살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가 참 힘들다. 나를 보아도 그렇다. 10년전에 했던 설교가 지금도 똑같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데 난 그리스도 안에 있질 못하니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은 그게 지금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으로 살지 않고, 결코 죽지 않을 존재로 부활하여 승천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과 죽을 수 없는 존재 사이의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구원 아니겠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 살고 있는 사고방식과 생활패턴과 감정의 뒤안에 있는 것들을 지켜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은총이며 사랑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윤민석 작사, 작곡)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난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 만든 노래가 틀에 박힌 내 마음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노래하는 찬송가로 들리는 이유처럼 들린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고발하는 노래로 들리곤 했다.  십자가를 회피하고 부활로 가는 길이 없는 것처럼, 자기라는 지독한 이고를 그냥두고 빛으로 가는 길은 없다.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로 이미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을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