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6 10.27.25.jpg


불편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하고, 바짝 긴장이 되고, 두려움이 밀려오고, 잘 놀래고, 신경쇠약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라보고 놀랜 가슴 솥뚜겅보고 놀랜다. 과거의 경험이 오늘을 지배한다.  앞으로 일어날 수 도 있는 일을 대비하며 지금 걱정을 한다. 그런데 말이다.  한마디로 자기 존재에 대한 위협을 느낀 것이다.  가진 것을 잃어 버릴까 걱정, 실패할까봐 두렵고, 상처 받을까 놀라는 것들은 딱 하나다.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가끔 죽을 병이 들었거나 사업실패와 가정파탄으로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사는 이야기를 가끔 흥미있게 시청한다.  여기에서 흥미있게 지켜보는 것은 "다 내려놓고" 죽을 준비를 한다든지,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버섯도 따먹고 도라지도 캐먹고, 그냥 하루 하루 연명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헛된 자기다. 옛사람이다. 육에 속한 것이다.  Ego 거짓된 자기를 내려 놓으면 자유가 시작된다. 두려움의 실체는 바로 이 거짓된 자기를 지키려는 헛된 짓의 결과이다.  두려움의 실체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12년전 아들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런 모든 걱정들이 부질이 없었다. 내가 그리도 걱정하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과거도 미래도 다 사라지고 "지금 여기"에서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리도 당연하게 여기던 일들이 참으로 소중한 축복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지금 여기에 주어진 것들이 얼마나 선물인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두려움없이 어떻게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간직하며 누리며 살수 있을까? 이게 종교의 핵심이다. 이것을 구원이라고도 말하고, 해방이라고도 말하고, 깨달음에 이르렀다고도 말한다.  만일 신앙이 좋은데 이 Ego를 다룰 줄 모른다면 그것은 가짜일 것이다. 아니 종교가 사람을 더 힘들게 얽어매는 짐일 뿐이다. 


두렵고 걱정스럽다면 빠지지 말고 가만히 지켜 볼 일이다.  화가 난다면 무엇이 나를 그토록 화나게 만드는지 가만히 살펴볼 일이다. 


감리사가 된 것은 나에게 축복이었다.  목사로서 교회를 떠나 객관적으로 세상과 교회를 바라 볼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물론 역할은 다르다. 하지만 65개의 교회와 목사들, 다양한 교회와 교인들을 경험하면서 좀더 떨어져서 내가 자랐고, 살아왔던 교회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구원의 시작이었다. 착각과 허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나에게 가졌던 공연한 허영심과 부질없는 자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행운이었다. 


허상과 환상과 착각속에서 어언 30년이 흘렀다.  잠에서 깨어난 느낌이다. 순식간에 30년 미국생활이 흘렀고,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어간다. 나는 이제 60을 바라보며 정신없이 걸어가고 있다.  지나가 버린 세월을 아쉬워 하며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조바심하며 지내기에는 세월이 너무 많이 가 벼렸다. 걱정과 근심으로 지금을 훼방하기엔 남은 세월이 그리 많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했다. 예수님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치 말라 하셨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단다. 공중나는 새도 먹이신다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하셨다.  살아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라신다. 염려대신 마음의 평안을, 걱정대신 희망을, 불안 대신 믿음을 가지고 지금 여기를 충분히 만끽하며 살라 하신다. 


죽기 아니면 살기? 아니다. 영원한 지금을 살라 하신다. 어제와 내일은 내것이 아니다. 지금 주어진 것만 내 것이다. 선물이다.  톨스토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때는 지금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일은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우린 언제 죽을지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죽을 때는 순서가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갈수도 없다.  앞만 보고 살았다는 후회를 하지 않고, 가진 것 써보거나 베풀지도 못하고 살지는 말아야지. 과거는 지나간 역사가 돼 버렸고,  내일은 아직 안 왔으니 지금 여기에 점을 찍으며 가야 하겠다.  이 마음, 이 순간, 여기에 점을 찍는 것점심((點心) 그것이 신앙이요, 그게 사랑일터,  지금 여기에 방점을 찍으며((點心) 점심이나 먹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