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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강경으로, 강경에서 망성으로 처남차를 몰고 왔다. 한국에서의 첫 운전이었다. 처음 길이라 조심스러웠다. 몇십년을 복잡한 보스톤에서 운전을 했으니 강경내려가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만 속도와 길이 오랫만이라 낯설었고, 내 차가 아니라서 편하진 않았다.


오래전에 전화로만 인사하고 그분의 책을 읽고 그분이 하는 수련에 대한 책만 읽었던 터라 스님을 만나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전라북도 장수읍 선창리로 GPS를 찍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집을 떠났다.  내 고향 익산고속도로를 지나 장수가는 길은 그 옛날 우리 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사카린 장사를 떠나곤 했던 길이다. 지금은 산은 뚫어 터널을 만들고, 강은 다리를 놓아 편안하게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산넘고 물건너 그 험한 길을 자전거로 장사를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고달픈 아버지의 인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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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산천은 정겨웠다. 산을 안고 개천을 바라보며 옹기 종기 집들이 들어 서 있고, 호남평야의 누런 들판, 가을이 익고 있었다. 탐스런 감들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었고, 개울따라 흐르는 시냇물도 정겨웠다. 두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장수가 나오고 선창리 사인이 들어 왔다. 조심스레 수련원에 들어 서니 스님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목사님, 전혀 낯설지가 않네요. 어서 오세요. 저도 목사님 만나기 위해서 30분 전에 일마치고 들어 왔어요!"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소박하게 꾸며진 법당에 들어가 예를 표하고, 돌아오니 각종 나물과 장아찌로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밖에서 사 먹느니 소찬이라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청국장이랑 채소셀러드, 그리고 한국식 낫도, 그리고 김치와 맛있게 점심을 먹으며 수인사를 마쳤다. 참 이상한 것은 나도 오래전에 뵌 누이처럼 경계심은 사라지고 내 가족과 얘기를 죽 하고 있었다. 동사섭과 아바타 수련, 그리고 초월 심리학을 두루 거친 대화스님은 조계종 비구니 스님이시다. 30년 넘게 사람들의 문제를 직시하고 생활불교와 초월 심리학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치유하신 베테랑답게 깊은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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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 에크하르트 톨레, 동사섭 수련, 아바타 수련 그리고 이고를 넘어서 본질을 직관하는 실질적인 방법들, 익히 내가 관심갖고 공부해온 터라 대화는 깊어져 갔다. 기독교 대학에서 심리학 대학원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도 일하고 계시며 공부하는 젊은 목사들을 제자로 두고 상담도 하고 계셨다. 종교를 초월해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문제를 직시하고 풀어 헤쳐 자유롭게 만드시는 기법들을 오랫동안 갈고 닦고 수련하신 분이라 대화는 자유로웠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항상 남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 말하는 사이에 어느새 나를 가르치려고 하시는 모습이 약간을 거부감이 들었지만, 달 옳고 깊은 통찰이니 애써 들으려 애를 썼다. 


이야기 도중 추천하는 책들을 서재에서 주섬 주섬 꺼내 주신다. 시간이 흐르자 한 보따리가 되었다. 앞으로 읽어 보아야 하겠지만 오랜 수련과 수천명을 지도하셨던 관록이 있으시니 좋은 책이겠거니 하며 감사히 받았다. 그중에는 내가 이미 읽고 정리한 책들도 있었지만, 구지 내가 읽고 묵상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재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중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안뒤 일어서려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여비까지 챙겨 주셨다. 당신은 상담비가 굉장히 비싸다고 하셨다. 돈은 중립적이어서 당신이 많이 가져 좋은 일에 많이 쓰고 있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온천여행도 추천해 주셨다.  마지막 육신의 어머니와 여행하며 나누었던 얘기를 들려 주시며, 더 늦기 전에 온천여행 하면서 좋은 시간 가지라며 여비와 어머니 드시라고 추석선물로 들어온 견과류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종교 얘긴 별로 안했다. 스님, 목사님 호칭만 종교일뿐 나눈 대화 내용은 사람들이 뭘 아파하는지, 어떻게 아픔을 이기고 풍성한 인생을 살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사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함께 나누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점심, 견과류, 따스한 차, 그리고 진심을 담은 여비... 난 미국에서 가져간 꿀가루뿐 배려와 정성을 담뿍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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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오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 굽이 굽이 국도로 왔다. 들판과 고국의 산천을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고속도로로 질주하는 것보다, 국도로 천천히 음미하며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되도록 천천히 굽이 굽이 돌아 집으로 오는 길은 참 아름답고 정겨웠다.  돌아가진 이모가 사시던 물건네와 친구들이 살던 어량리, 무네미, 그리고 내가 다니던 망성 초등학교를 지나 집으로 돌아 왔다. 누렇게 익은 벼와 너무 익어 오히려 고개숙인 수수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멀리서 미륵산이 보이고,  초등학교 짝사랑 종옥이가 살던 무형리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서산에 석양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햇빛에 구름이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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