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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막 1:11-12)

에니어그램 웍샵을 하고 난 다음 권사님 한분이 나를 찾아와 성토를 했다. 단단히 화가 나셨던 모양이다.  당신을 화나게 한 이유를 하나부터 여덟가지 조목 조목 들어가면서 당신이 왜 화가 났는지 따지셨다.  그분은 전형적인 8번형, 대단히 적극적이고 대화의 중심을 이끌고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화가 난 이유가 다 생각이 나지 않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들킨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신앙이 좋고, 지도력도 있고, 희생적이고, 남들을 잘 거두어 먹이는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도 “권사님은 물어볼것도 없이 8번이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알아차렸다. 저돌적이고, 대장을 해야하고, 권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고, 상황을 압도하고 지배해야 직성이 풀리는 8번이라는 사실을 들킨 것이다.

그분에게는 구원의 순간이었다. 수십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자각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자기에게 빠져 살다가 자기를 인식하는 변화의 순간을 기분나쁘게 맞았던 것이다. 자기는 희생적이고 지도력이 있고, 사람이 좋아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착각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었는데 그만 들켜 버린 것이다. 자기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챙피를 당했다고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을 자기가 보고 싶은데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수 있는 행운을 챙피를 당했다는 느낌으로 경험한 것이다. 훗날 교회를 떠나고 다시 만났을때에는 나에게 진심으로 사례를 하였다. 제3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교회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경험을 아프게 한 것이다.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눈이 먼 사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바울로 거듭나는 은총의 순간을 그분은 창피스럽게 경험한 것이다.

독일의 신비가이자 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영성생활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이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린 빼기하는 것을 잃어 버렸다. 신앙생활마저 뭔가를 더하려고 하고 가지려고 한다. 빼서 뭘하겠다는 건가?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하는 거짓자아를 버리고 진아를 만나려는 것이다. 금식을 하면서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경험하고, 자선을 통해서 물질을 빼내고, 기도를 통해서 자기를 둘러싼 막들을 제거하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을 들으신 후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다. 빈 손과 빈 몸을 체험하는 장소다. 그런데 그 황량한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사셨다 했다. 들짐승은 우리의 모든 부정적 요소들이다. 보고 싶지않은 내 모습을 대면하는 일이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했다. (롬 5:20) 죄는 은혜가 가려진 것일 뿐, 죄와 은혜는 동전의 앞뒤면이다. 어둠과 싸우려고 하면 어둠에 삼켜 버린다. 작은 빛이라도 들여오면 어둠은 물러 간다. 따라서 자신의 불합리하고 어리석음과 싸우려고 하지 말라. 헛된 일이다. 그냥 지긋이 바라보고 인식하라. 이것을 우리는 기도라 부른다.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던 예수를 천사들이 시중을 들었다. 생명과 빛의 세계로 나오신 것이다. 어둠을 무시하면 어둠이 집어 삼킨다. 어둠을 응시하고 간파하고 빛을 받으면 죄는 은총을 받는 도구가 된다. 이것이 복음이다. 생명을 주는 복음이다. 나에게 화를 냈던 권사님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 꾸미는 거짓된 자신을 부여잡고 불행하게 살지 않기를 기도를 드렸다. 자신을 응시하고, 대면하고, 인식하고, 사랑이신 그분의 품으로 뛰어드는 복음의 삶을 사시기를… 교회안에 거짓이 더 많고, 꾸미고 치장하는 일이 많은 것은 놀랄일이 아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다시말하면 어둠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더 지독하게 자신에게 빠져 헤어나오기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복음을 들어야 할 곳은 세상이 아니라 교회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