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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지역에서 자라는 야생밀)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눅 15:12-13)

어른이 되려면 어린아이의 습성을 벗어야 한다. 이 아이의 습성을 벗는 시기가 사춘기이다. 사춘기를 통해서 아이는 부모의 보호에서 홀로 독립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 위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다. 

영적으로 이와 똑같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집나가겠다는 작은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달라는 돈도 주었다. 방탕과 실패를 거듭하며 거지가 된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도 벌을 주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돌아온 아들을 맞아 주었다. 큰 아들의 불만과 불평에도 돌아온 사실만 부각시키며 도리어 큰 아들을 타일렀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 했던가? 돌아온 작은 아들, 집에 있던 큰 아들 모두 아버지의 큰 가슴을 경험했다. 품군의 하나로 돌아와 아들 자격이 없다던 작은 아들을 환대하며 맞아 주었고, 불평하던 큰 아들에게 살아가면서 무엇인 중요한지를 알려 주었다. 

자유의지대로 떠나도록 허용했고, 돌아온 아들을 맞아 주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일이겠는가?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일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겪는 당사자와 이 고통스런 과정을 겪는 아들을 지켜보는 아비도 다 쉬운일이 아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는 일과 그것을 지켜보는 지도자의 역할도 만만치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예수께서도 "다시 태어나는 일"처럼 어렵다 하셨을까?  아들의 실패와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켜보는 아비의 일도 힘든일이다.  죽을수도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는 방탕을 허용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8월이면 현지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제 곧 사회로 나간다. 18살이 넘으면 놓아주어야 한다는데 24이 되도록 함께 있을 수 있는 기쁨을 준것만으로 고맙고, 아직도 남아 있는 준택이는 우리가 누릴 더 큰 기쁨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다만 집을 떠나 만고풍상을 겪어야 하는 딸아이의 인생을 그냥 가만히 지켜 볼 밖에.  또 이런 아비의 과제를 잘 감당해야 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