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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의 쿰란 동굴: 타락한 야훼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사막으로 나와 정결한 삶을 살았던 공동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마 21:31-32)

어릴적부터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열등감이다.  자존감의 결핍이다. 끝도 없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속에서 늘 괴로워 했다. 그 때 나는 불구자도 아니었고, 공부도 잘했다. 집에서는 자랑스런 큰 아들,  큰 도련님었는데...

나이들어서도 이것이 나를 괴롭히긴 마찬가지였다. 목사가 되어서도 열등감을 계속되었다.  어줍잖은 자신을 나무랬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했고, 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써 버렸다. 그래서 늘 피곤했다.

나중에 철들고 깨달은 사실은 이런 심한 죄책감과 부정적인 자아상은 잘못 주입된 가치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예욕, 권력욕, 소유욕이 그러하다. 유명하게 되어 집안을 빛내는 것, 출세해서 힘을 갖는 것, 부자가 되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믿으면 이런 것들을 축복으로 얻을 수 있다고 배웠다. 예수 잘믿으니 미국이 저렇게 잘 살고, 예수 잘 믿으니 출세한 아무개를 보라고 지금의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늘 열등감을 가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돈, 명예, 성공을 하나님처럼 믿고 산 내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절망하고 결핍감에 시달려야 했다. . 권력을 가진 법관이 되는 것, 출세해서 돈을 많이 가지는 것, 이것을 교회 용어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것을 가치로 삼았으니 그러지 못하는 내가 마냥 못나 보였던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질수 밖에 없는 싸움속에 끼어든 것이다.  

가끔 옛날 교인들을 만난다. 입에 익은 "목사님!" 하시다가 감리사님이라고 부르지 않아 죄송하단다. 목사라는 말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데... 무의식적으로 직위에 대한 선망이 있다. 아마도 내가 감리사직을 수락한 큰 이유중에 하나도 권력에 대한 무의식적 충동이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낸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젠 난 안다. 질수 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이젠 그런 싸움 안하려고 애를 쓴다. 정죄하고 가련한 나를 깍아내리는 일을 그만 두고 그냥 가만히 "이런 나를" 지켜보며 너그럽게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라저 아저씨의 이웃에서 나오는 노래를 상기 시킨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바로 나"라고.  지금 목사니 감리사니 하는 것은 살아가면서 잠시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같은 것이고, 정작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나라고.  세상적인 욕망과 출세욕과 명예욕은 깨어지고, 천하보다 귀중한 생명을 선물을 받은 내가 깨어나고 그래서 깨 쏟아지는 삶으로 가는 게 유일한 목표라고...